산우회, 7월 산행 후기

2019-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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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해서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하니까 성공한 거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수성(水聲)계곡과 백사실(白沙室)계곡을 다녀왔다. 수성계곡은 서촌(西村)에 있다. 서촌은 경복궁 서쪽에 있는 마을을 일컫는 별칭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서쪽에 있는 청운동, 효자동, 사직동 일대를 말한다. 이 유서 깊은 마을은 골목을 돌아서면 동명(洞名)이 바뀔 정도로 동(洞)이 많다. 오늘 길 안내는 김중곤이 맡았다. 한 바퀴 돈 후 그의 집에서 뒤풀이가 예정되어 있다.





  수성계곡으로 가면서 군데군데 있는 서촌 문화탐방을 했다. 먼저 이상(李霜) 옛집에 들렀다.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이다. 그는 1910년 태어나 27세에 요절했다. 우리에게 소설 ‘날개’, 시 ‘오감도’ 등 난해한 문학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천재다. 이 집은 이상이 세 살부터 20여년 간 살던 집이다. 철거 위기에 있던 이 집을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시민 모금과 기업 후원으로 매입해 보전 관리하고 있다. 옛집 마당에 있는 흉상에서 그의 비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조영남은 「이상(李霜)은 이상(理想/異常) 이상(以上)이었다」에서 “나는 완벽한 아나키스트를 딱 한 명 알고 있다. 그게 이상이다. 자신의 독립정부를 차려놓고 완전히 정치적으로 독립했다. 자질구레한 역사로부터, 허접스러운 인습으로부터, 우리한테 뭐라 말 한 번도 걸지 않은 자연으로부터도 멀리 떠나 있었다.”라고 그의 이상성(理想性/異常性)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어 들린 곳은 박노수(朴魯壽)미술관이다. 남정(藍丁) 박노수(1927~2013)는 간결한 운필과 강렬한 색감으로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하여 전통을 살리면서 현대적 미감을 살린 작가로 평가되고 있는 화가다. 약 80년 전에 지어졌다는 그의 옛집은 한옥과 양옥을 절충한 2층집이었다. 2013년 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으로 개방된 이 집에는 그의 작품과 고미술품, 수석, 고가구 등 유품이 전시돼 있었다.



 

  수성계곡까지 이르는 오르막길 왼쪽에 있는 윤동주 하숙집을 지났다. 1941년 연세대 재학 중이던 윤동주는 자신이 존경하던 소설가 김송(1909~1988)이 살던 이 집에서 하숙생활을 했다. 현재 다세대주택으로 변해버려 옛집의 원형을 잃은 게 너무 아쉬웠다. 그나마 청운동 윤동주문학관에서 그의 발자취를 감상할 수 있었던 게 커다란 위안이었다.



 

  80년만이라는 7월초 폭염을 뚫고 수성계곡에 닿았다. 김중곤이 여기가 가장 가까이에서 인왕산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선지 이곳이 고향인 진경산수화 대가 겸재 정선도 수성동계곡을 그린 작품을 남겼다. 얼마 전까지 이곳엔 1971년 지어진 옥인아파트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인왕산을 가리고 계곡 암반을 복개해 자연경관을 훼손한 대표적인 아파트였다. 그러던 것을 2011년 서울시가 시비 1000억 원을 들여 옥인아파트를 철거하고 수성동계곡을 복원하게 되었다 한다.



 

  백사실계곡을 가기 위해 무무대(無無臺)에 오르니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아무 것도 없구나. 오직 아름다운 것만 있을 뿐 …’이라고 적힌 표지석에 공감이 간다. 너무 아름다운 서울 전경이다. 이곳 인왕산(338m)과 북악산(342m)의 높이가 고만고만하다는 윤진평의 설명이 이어졌다.



 

  백사실계곡은 청운동 최규식경무관 동상에서 올라간다. 그는 1968년 1월21일 종로경찰서장 재직 중 청와대를 습격한 김신조 일당과 전투하다 장렬하게 전사한 경찰관이다. 그는 흉탄에 맞으면서도 “청와대를 사수하라.”는 마지막 명령과 함께 숨을 거두었다.



 

  백사실계곡은 창의문(彰義門)을 지나 오른쪽 언덕으로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창의문은 인왕산과 백악산이 맞닿은 곳에 있다. 이 문은 혜화문, 서소문, 광희문과 함께 사소문(四小門)으로 불린다. 이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 지어진 문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문루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영조 때 다시 세운 것이다. 이 문 부근의 경치가 개성(開城)의 명승지인 자하동과 비슷하다고 해 자하문(紫霞門)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문을 나서자마자 좌우에 있는 일반 주택이 문화재의 품위를 떨어트리고 있다. 언젠가는 공원으로 정비되어야겠다.



 

  백사실계곡으로 가기 위해서는 경사가 제법 심한 언덕을 한참 올라가야만 했다. 도중 어느 건물 입구에 걸린 글이 눈에 확 들어온다. “성공해서 행복한 게 아니야, 행복하니까 성공한 거라고 …” 맞다, 맞는 말이다. 백사실계곡은 조선 중기 재상이자 학자인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별장터가 있어 붙은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서울에 있는 몇 안 되는 청정계곡으로 도롱룡이 산다고 해서 화제가 된 곳이다. 깊은 숲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은 과연 이곳이 서울 한복판인가 의심이 갈 정도다.



 

  별장터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여기서 10분 거리에 있는 김중곤 집에 들렀다. 부암동 언덕배기에 있는 3층짜리 단독주택이다. 아담한 정원을 지나 현관문을 들어서니 부인이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다. 김치찌개 두루치기, 매운탕, 음료 등을 한 상 차려 놓았다. 빈손으로 온 게 민망했다. 부인은 우리끼리 편하게 놀라고 병원 간다며 자리를 비웠다. 북한산 비봉, 사모바위, 보현봉이 한 눈에 보이는 식당에서 먹고 마시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맘껏 즐겼다.



  우리를 초대한 김중곤 주인장과 마나님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집을 나서는데 누군가 염치없게도 내년 5월에는 정원에서 가든파티를 하자고 제안한다. 그만큼 오늘 모임이 좋았다는 얘기로 해석됐다. (허정회, 2019.7.6.)


※ 함께한 친구들 :
고중희, 김동준, 김수곤, 김중곤, 박종헌, 오 영, 유재두,
윤진평, 이규옥, 이도선,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이상 1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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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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