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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문 이재웅 동기 요트로 태평양 횡단 성공

2021-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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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 서거로 국내 정세가 어수선하고 국민들 마음이 암울할 때인 1980년 3월 경일산업에 근무하는 노영문과 고향에서 사업하는 이재웅이 아마무선사인 배원근 동기를 찾아와 요트를 타고 태평양을 횡단하고 싶은데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그래서 배원근 동기는 동아일보사의 후원을 받게하여 5월 23일 현대조선소 선착장에서 조촐한 환송행사를 한 후 파랑새호 요트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향해 출발하였다.
 
저녁 9시 TV뉴스에 노영문 이재웅 동기가 출발하는 사진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이때부터 두 동기의 태평양횡단은 국민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요트에는 배원근 동기가 사용하던 통신장비를 설치하여 이 친구들과 통화내용을 동아방송에서는 매일 오후 2시에 특집프로로 생방송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의 일정은 일본 시모노세키를 거쳐 기수를 북동쪽으로 돌려 하와이 북방을 거쳐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동진하여 금문교에 도착하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처음에는 파랑새호의 노영문과 이재웅은 교신시간도 잘 지켰고, 교신도 잘되어 이 친구들의 소식은 동아방송 전파를 타고 매일 전국에 전파되었다. 그러나 이 친구들이 하와이를 지나면서 교신이 두절되어 배원근을 비롯한 온 국민들의 걱정은 쌓여만 갔다. 나중에 안 일로 이 친구들이 무심코 주파수 고정스위치를 눌러놔서 교신을 할 수 없자, 두 친구는 무전기가 고장 난 걸로 착각하고 교신을 포기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망망대해의 바람과 폭풍, 적막감과 두려움 등 많은 고난을 헤치고 75일간의 긴 항해 끝에 8월 6일 파랑새호가 LA 마리나 델 레이항구에 도착하자 이 광경은 KBS TV를 통해서 위성으로 한국에 생중계되었고, 동아일보에는 사진과 함께 1면 톱기사로 보도되었다. 미국 언론에서도 한국의 용감한 두 젊은이의 이야기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그리고 미국과 한국에서 대대적인 환영행사가 줄을 이었다.
 
신일의 노영문 이재웅 두 동기가 12,000마일에 걸친 75일간의 태평양 첫 횡단은 세계 최초의 공식적인 자료로 영구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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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내용 일자

이 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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