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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고등학교 야구부 창단

2021-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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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년 8월 25일 조회 시간에 신일고등학교 야구부 창단식이 金三悅 교장을 위시하여 야구 관계자들 그리고 교직원과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이날 식전에서 金三悅 교장은 “꾸준한 연습을 통해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살리라”는 간곡한 축사가 있었으며 뒤이어 韓東和 감독에 대한 임명식과 신일 야구부의 상징인 야구부기가 부장 宋錫英 교사에게 수여되었고, 대한야구연맹 총무의 축사가 있었다.

 韓東和 감독은 현역시절 건실한 내야 수비의 준족으로 톱타자의 표본이라고 불려졌던 선수였다. 이처럼 훌륭한 감독을 사령탑에 앉힌 후에 창단이 이루어진 것은 실로 뜻 깊은 일이었다. 선수는 金貞洙, 金浩根, 朴鍾勳(이상 투수), 金男洙, 梁承虎, 盧承珍, 金南鉉(이상 내야수), 朴千洙, 李鍾浩, 정강석, 曺龍鉉(이상 외야수)이었다.

 李奉守 이사장을 비롯한 네 분 설립자와 金三悅 교장의 아낌없는 후원 하에 역사적인 창단을 한 신일 야구팀은 고교야구의 “막강한 새 강자”로 이름이 오르내리게 되었다. 그것은 1974년 소년체전 부산대회에서 서울대표로 출전하여 준우승, 7월의 서울시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신일중학교 선수들이 고스란히 고등학교로 진학한데다가 광주 동신고의 야구부 해체로 주전 선수 5명이 신일 야구팀에 합류하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서울 시내 중학교 야구의 최강자인 선린중의 崔洪錫과 당시 중학 야구계의 대형 투수였던 청주중의 金貞洙가 가세하여 투수 4명에 9명 전원이 막강한 타력을 자랑하는 강타선을 이룩하였다.
 

고교 야구의 ‘태풍의 눈’으로 등장
 1975년 창단된 이래 중앙 무대에서의 첫선인 대통령배 서울시예선 겸 춘계연맹전에서 감격의 우승을 차지하여 처녀출전 팀의 처녀우승으로 세인을 놀라게 하였다.
이 대회의 첫 게임에서 경기고를 막강한 타력으로 7 : 0, 7회 콜드게임으로 격파하고 연이어 성남고와의 경기에서 매회 득점하여 고교 야구의 기록을 세우면서 14 : 4, 7회 콜드게임으로 제압, 고교야구계의 ‘태풍의 눈’이 될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약체 경기고, 배문고 상문고를 연파하고 준결승에 뛰어오른 신일야구팀은 투수 李吉煥이 이끄는 강호 선린고를 4번 金炅勛의 좌월 1점 홈런으로 기선을 제압하고, 7회말 김정수가 2점 홈런을 치는 등 맹타를 퍼붓고 金貞洙가 역투하여 7 : 0으로 완봉하고 대망의 결승전에 올랐다. 결승전에서 신일은 2회말 4안타와 1·4구를 집중, 2점을 선제했으나 서울고가 3회초 2점을 만회, 8회 초까지 불꽃튀는 접전을 벌였다. 드디어 행운의 8회말 金弘鉉의 안타 후 3번 崔洪錫의 중전안타와 金洙男의 4구로 2사 만루의 찬스에서 6번金男洙가 鮮干大泳으로부터 4구를 탈취, 대망의 결승점을 올려 창단 후 전승을 거두고 감격의 첫 우승을 차지하였다.
첫 우승을 거두었을 때 선수들은 운동장에 꿇어 앉아 기도드렸고, 1천여 명이 참가한 신일 응원석에서는 일제히 함성이 터졌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후 신일선수들은 매 경기 후 그라운드에서 기도 드리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대통령배 대회 본선 진출
 1976년도 서울시춘계연맹전 및 대통령배 예선전에서는 상문고를 이기며 1971년에 이어 2관왕이 되었고, 이어 대통령배 본선에서는 부산시 우승팀인 전통의 경남고와 1차전에서 격돌했다. 초고교급 투수 金貞洙와 崔東原의 대결로 7회까지는 신일이 1:0으로 앞서다 8회초 이날의 영웅 金洙男이 최동원의 제1구를 강타, 신일 응원석으로 통쾌한 2점 홈런을 날려 승기를 굳혀 경남고의 추격에 찬물을 끼얹고 3:0으로 이기며 8강의 대열에 올랐다. 이어 우승 후보인 군산상고와의 대전에서는 1:0으로 기선을 잡았으나 끈질긴 군산상고에 3:1로 역전되어, 다시 이를 맹추격 3:2까지 접근하였으나 뜻밖의 홈런을 맞아 4:2로 분패를 하고 말았다.

청룡기 대회 본선 진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제31회 청룡기쟁탈 전국고교 야구선수권 대회(朝鮮日報社 주최)가 1976년 6월 14일부터 6월 20일 까지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서 베풀어졌다.
이 대회에서 서울대표(信一, 善隣, 尙文)로 출전한 본교 야구팀은 제1차전에서 만만찮은 전력을 갖춘 馬山商高팀을 맞아 9회 말 투아웃에서 6번 타자 金貞洙군의 회심의 일타가 그대로 포물선을 그리면서 홈런으로 대세는 역전되어 3:2로 신일이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제2차전에서 경북의 강자인 경남고를 맞아 분전했으나 아깝게도 3:1로 패하여 1천여 재학생 및 동문 응원단의 눈물을 삼키게 했다.
 

花郞大旗 준우승
 항도 부산에서 해마다 베풀어지는 화랑대기 쟁탈 전국고교 야구선수권 대회(제28회)가 구덕운동장에서 열렸는데, 신일야구팀은 결승전에서 부산상고 팀과 싸워 3:0으로 패하여 준우승에 머무르고 말았다. 그 당시의 전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1차전 對 大田高 2 : 0 승
제2차전 對 釜山高 12 : 1 승
제3차전 對 慶南高 2 : 0 승
제4차전 對 釜山商高 3 : 0 패
 
 한편 이 대회에서 본교 야구팀의 에이스인 車容甲군이 對 부산고전에서 주자 일소의 만루 홈런을 날려 만장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 홈런은 본 대회 7호인 동시에 본 대회사상 최초의 만루 홈런이어서 항도 야구팬들을 열광시켰다. 그리고 본교의 정통파 투수인 金貞洙군이 필사적으로 복수전을 다짐하며 덤벼드는 경남고의 도전에 찬물을 끼얹은 회심의 솔로․홈런으로 숙적인 경남고는 서을 대회에 이어 또다시 2:0으로 무릎을 끓고 말았다. 비록 이 대회에서 우승은 못하였지만 본교 야구팀과 임원 일동은 그야말로 최선을 다한 경기였다.
 

신일야구부 창단 11개월 만에 황금사자기 승리
 신일이 이루어 놓은 세 번째 신화로 그것은 대학 입시 그리고 농구에 이어 1976년 7월 20일 서울운동장야구장에서 일어났다.
제30회 황금사자기 쟁탈 전국지구별 초청 고교야구대회(東亞日保社 주최)에서 청룡기대회 우승팀인 경남고와 대통령배 우승팀인 군산상고를 차례로 물리치고, 황금사자기를 세 차례나 차지했던 전통의 팀 선린상고를 零封(영봉)하여, 전국 대회 출전 5개월 만에 명실상부한 전국의 패자가 된 것이다.

 1975년 8월 25일 창단될 때만 해도 신일 야구가 전국을 제패하리라곤 아무도 예측을 못하였다. 그러나 몇 차례의 전국 대회 우승에의 도전이 좌절되는 쓰라린 상처를 와신상담 끝에 빛나는 승리로 맞바꾸었던 것이다. 특히 이 대회에서 신일팀은 대통령배 覇者인 군산상고를 7:0으로 격파 전 대회에서의 敗北를 설욕했고, 청룡기 覇者인 강호 경남고를 1:0으로 제압했으며, 결승전은 야구의 명문 선린상고를 맞아 통쾌한 장․단 안타를 터뜨려 2 : 0으로 완파하여 첫 우승을 거두었을 때 선수들은 운동장에 꿇어앉아 기도 드렸고, 수천의 신일 응원석에서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프로야구가 생기기 전인 당시 고교야구는 전 국민의 관심거리였다.

이때의 상황을 소개하여 일간지들은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 창단 첫 출연의 신일고가 대망의 황금사자기를 차지했다.
지난 해 8월 팀을 조직하고 올 봄부터 대회에 출전하며 전국대회 석권을 벼르던 신일고는 19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제30회 전국 지구별 초청 황금사자기 고교야구 쟁패전 7일째 최종일 결승전에서 명문 선린상고를 2:0으로 완봉, 꿈을 이룬 것이다. 이날 신일의 에이스 金貞洙는 이 대회에서 4번째 우승을 노리는 선린상고 공격진을 강속구와 드롭․커브로 무력하게 만들었고 6번 타자 金男洙는 적시타를 날려 수훈을 세웠다. 이 대회 제패로 신일은 8월 중순에 있을 일본 원정 자격을 얻었다. 서울팀 끼리의 대결이라 이날 관중은 2만, 이 대회에서 최근 서울팀의 우승은 6년만의 일이다.
金貞洙와 李吉煥을 선발로 등판시킨 양팀의 승리 예상은 다소 신일 쪽에 기울었지만 선제 기회는 전통의 선린상고에 먼저 왔다. 金貞洙와 겨루어 본 적이 많은 선린상고는 1회초 선두 타자 金亨坤이 깨끗한 우전 안타로 돌파구를 열고 보내기 번트로 2루까지 진출. 다음 타자 鄭宗鉉의 타구는 오른쪽으로 세게 부는 바람을 타면서 중견수 앞 행운의 안타가 됐고 4번 李吉煥은 포볼을 골라 1사 만루의 절호의 득점 기회. 선린상고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에 구장은 흥분됐고, 신일 벤치와 마운드 간에 전령이 오락가락하면서 초비상. 관중이고 선수고 모두 다음 타자와 투수에만 정신이 쏠려 있을 때 1루에 견제구를 던지자 감독의 사인에만 정신을 쏟던 이길환은 어이없이 태그아웃. 위기를 넘기고 이 대회 초반부터 불이 붙은 신일의 방망이는 2회 말에 터졌다. 1사후 5번 金貞洙가 포볼을 고른 뒤 매 게임 수훈을 세운 金男洙는 중견수 머리 너머로, 7번 최홍석은 좌익수 옆으로 빠지는 통렬한 2루타를 갈겨댄 것이다. 이날의 승패를 가른 2득점 이후 신일은 3, 6회말에, 선린상은 4, 5, 6회초에 각각 선두 타자가 진출하고 득점의 기회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갔으나 金貞洙, 李吉煥 양팀 투수의 호투에 눌려 범타나 삼진, 또는 포수 견제구 물러났다.

(東亞日報 76. 7. 21字)

 한편 이 대회에서 1루수 金男洙는 최우수 선수로 선발되었고 金貞洙 투수는 우수투수상을, 중견수로 활약한 崔洪錫은 수훈상을 받았고, 韓東和 감독은 감독상을, 金三悅 교장은 공로상을 수상하여 시상식장은 신일고등학교 일색으로 장식하였다.
 이날 운동장 안팎은 온통 신일인의 축제 무드에 휩싸여 버렸으며, 재학생 응원단(지도 邊仁植 교사)과 동문 응원단(단장 明桂南)은 혼연일체가 되어 이 기쁨을 만끽하였고, 다소 흥분한 동문들은 그라운드로 뛰쳐나가 선수들을 기마전하듯 무등을 태워서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다.
李奉守 이사장, 李永守 이사 그리고 金三悅 교장이 응원석까지 찾아와 손을 흔들어 승리를 축하하는 것으로 축제 무드는 절정에 달하였다. 이리하여 신일 야구는 모교의 품안에 또 하나의 신화를 안겨 준 것이다. 그 후 본교 야구팀은 황금사자기 우승팀의 자격으로 한일 친선 야구대회 참가 차 일본 원정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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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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